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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문경의 추석 세시풍속

문경향토사 연구자 이만유

 

(문경향토사 연구자 이만유)추석에 관한 우리 속담에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문경에서는 예로부터 “먹기는 추석처럼 먹고, 입기는 설날처럼 입는다”라는 말과 "먹는 것은 추석날같이 먹고, 입는 옷은 장가갈 때처럼 입어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풍족한 세상이지만 예전에는 먹고사는 것이 어렵고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라 배불리 실컷 먹고 즐길 기회인 추석이 기다려졌고 일 년 내내 추석만 같기를 바라는 민초들의 소박한 소망이 담긴 말이다.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로서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문헌상 추석의 유래는 중국의 ‘수서(隨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와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 지내기 좋아하며 팔월 보름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고 했다.

 

 

우리 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있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두 왕녀에게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추석 한 달 전부터 길쌈을 하여 팔월 보름에 성과를 따져서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노래로 지은 것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추석은 고려 시대에 와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되었다. 고려 9대 속절은 원정(元正, 설날)·상원(上元, 정월대보름)·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였다. 이 명절들은 조선 시대로 이어져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우리나라 세시풍속이 대다수 농경의례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만큼 근래 산업사회 이후 농촌의 인구 감소와 농업이 국가 경제에 있어 그 비중이 축소됨으로 인해 세시 명절 또한 약화하였고 추석 역시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그나마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점점 전통문화는 퇴색되어 가고 있다.

 

 

그럼,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 많지만 문경의 추석 세시풍속은 어떤 것이 있었는가? 그 양상을 살펴보면 먼저 추석 전에 조상 산소를 말끔히 벌초하고, 가능한 한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에 올릴 제물을 준비한다. 명절 떡은 대다수 집에서 솔잎을 깐 시루에서 쪄낸 ‘송편’을 준비하였고 그다음으로 ‘마구설기’나 ‘기지떡’을 많이 만들어 먹었다. 기지떡은 기증떡, 증편, 기주떡, 술떡, 벙거지떡 등으로도 불린다. 쌀가루에 술(주로 막걸리)을 넣어 발효시킨 뒤에 밤, 대추, 잣, 깨, 석이버섯, 각종 꽃으로 고명을 뿌리고 쪄낸다. 기지떡은 술과 고명의 향기로 새콤달콤한 풍미가 일품이며 소화가 잘되며 빨리 쉬지 않는 특성을 가진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떡이다. 흥덕 예동에서는 추석 차례를 떡으로 지내는데 찹쌀과 팥을 섞어서 만든 ‘마구설기’라는 떡을 만들어 쟁반에 깔고 송편을 얹고 그 위에 기지떡을 놓아 조상의 수대로 올렸다고 한다.

 

추석날 아침에 차례를 지낸다. 차례 음식은 설날 차례 때와 비슷하지만 설날의 떡국 대신 추석에는 송편 또는 밥을 놓는다. 추석이 수확기보다 일찍 와서 햇곡식을 거두지 못하면 묵은 곡식으로 지낼 수밖에 없지만, 일부는 햇곡식이 나는 음력 9월 9일 중구절에 차례를 지내기도 하였다. 차례를 마치고 음복을 겸해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성묘하러 간다. 포와 과일 등 간단한 음식을 가지고 산소에 가서 술 한잔을 올리고 재배로 성묘하고 묘소 앞에 둘러앉아 조상 얘기, 옛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정겹게 살았던 일들을 나눈다.

 

 

추석날 읍면동에서는 이동 대항 씨름대회를 열기도 하였고 강변 모래사장에서 마을 사람끼리 혹은 이웃 동네끼리 편씨름하고 서로 친목을 도모하였다. 이 씨름놀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볼 수 있고 또한 도깨비하고 씨름하여 왼 다리만 번쩍 들면 이긴다는 전설이 있는 걸 보면 아주 역사가 오래된 민속놀이다. 이윽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합장하고 각자 가슴에 품고 있던 소원을 빈다.

 

읍면동별로 추석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위에 기술한 문경의 추석 세시풍속과 대동소이 하나 조금 특이한 것들로 산양면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어정칠월, 동동팔월”이라 하여 추석을 즐기는데 햇벼를 수확하지 못하면 덜 익은 푸른 벼를 베어 나락을 쪄서 말려 사용한다. 옛날에는 근친(覲親)이라 해서 추석 때가 좀 한가한 시기라 추석을 전후해 시집간 딸이 친정에 가서 부모를 뵙기도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면 시집과 친정 중간 지점에 만남을 약속했다. 이것을 “반보기”라 했는데 이런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문경읍에서는 읍사무소가 주관하여 송아지를 상품으로 걸어놓고 씨름대회를 개최하였다. 규모가 꽤 커서 애기씨름, 중씨름, 상씨름으로 나누어서 밤이 늦도록 경기가 벌어졌다. 마성면의 경우에는 신현 강변 모래사장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는데 1주 정도 지속되기도 했다. 온갖 장사꾼과 놀음 꾼이 몰리고 야시장이 열려 큰 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산양면 반곡리에서도 마을 앞 영강 모래사장에 모여 씨름대회를 했는데 포내, 진정, 석골을 비롯해 인근 마을 사람들이 추석 오후에 모여 마을별로 겨루었다고 한다. 그 외 산북 서중리 기록에 산북면에서도 마을 대항 씨름대회가 있었다고 하였고 점촌 창동 기록에도 송아지를 상품으로 걸어놓고 마을 대항 씨름대회가 열렸는데 달이 밝은 밤에도 계속 씨름했다고 한다.

 

호계면 가도리에서는 추석에 ‘다리밟기’를 했다고 한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다리를 건너면 일 년 내내 액을 물리치고 다리가 아프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문경 고요1리에서는 1970년대에 마을에서 콩쿨대회(노래자랑)가 열리기도 했다.

 

 

격세지감, 중추절 큰 명절에 지금은 문경시 관내 어디에도 추석 고유 전통행사나 씨름대회 하나 열린다는 곳이 없다. 시대는 변하고 성인도 시속(時俗)을 따르라. 했으니 아쉽지만 어쩌랴! 올해 유례없는 무더위로 고생했던 여름도 지나가고 태풍 힌남노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지만 이제 선선한 바람,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좋은 계절이다. 모두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즐겁고 행복한 추석 명절과 연휴 보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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