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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그저 기자일 뿐입니다”

산불 현장에서 마음이 무너져, 양말 400켤레 보낸 이름 없는 손길

 

(데일리대구경북뉴스=황지현 기자)지난 3월, 경북 의성의 하늘은 잔인하게도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괴산리에서 시작된 불씨는 순식간에 안동, 영덕, 영양, 청송으로 번지며 거대한 재앙이 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 검게 그을린 농기계와 무너진 주택들, 어미 잃은 가축의 울음… 그 모든 것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잿더미 한가운데서 누군가는 펜을 들었다. 산불이 번질수록 그녀의 문장은 더 조심스러워졌고, 화마가 할퀴고 간 마을을 취재하며 그녀는 몇 번이나 목이 메었다.

 

대구 지역 일간지 영남일보 소속 한유정 기자. 그녀는 이번 산불 피해 현장을 취재하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한 상자를 보냈다. 의성군청 앞으로 도착한 그것은 다름 아닌 양말 400켤레였다.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그녀는 단지 “너무 마음이 아팠고, 작은 위로라도 되고 싶었다”고 했다. “많이 보내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양말은 그녀가 택한, 가장 조용한 연대의 언어였다. 산불 피해 이재민들 중에는 신발조차 챙기지 못한 채 대피한 이들이 많았다. 맨발에 가까운 발을 감싸 줄 따뜻한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다가갔다. 자칫 기사 뒤에 숨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기자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감추었다.

 

그녀의 삶은 넉넉하지 않다. 이름난 특파원도, 간판 앵커도 아니다. 그러나 한유정 기자는 이 시대 저널리즘이 잊지 말아야 할 어떤 본질을 되새겨준다.

 

고통의 현장에서 글을 쓰는 이가, 그 고통에 아파하며 사람으로서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진짜 저널리즘이 아니냐고, 그녀는 조용히 묻고 있는 듯하다.

 

의성군은 지금도 피해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천774억 원이 넘는 피해액, 수천 명의 이재민, 잿더미로 변한 마을들. 정부와 경북도, 군의 예산이 복구를 위해 동원되고 있지만, 이 작은 양말 박스 하나가 전하는 온기는 그 어떤 공적 자금보다 진하고 단단하다.

 

보도자료에도 남지 않은 이름. 군청도 처음엔 누가 보냈는지 몰랐다. 동료들의 전언과 우연한 경로를 통해 그 손길이 기자라는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말한다.

“저는 그저 시민들의 고통을 알리는 기자일 뿐입니다.”

 

산불의 그을음보다 더 진한 흔적을 남긴, 이름 없는 기자의 이 소박하고도 위대한 연대. 지금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진짜 뉴스는 어쩌면 이런 한 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한유정 기자는 영남일보TV에서 ‘까마기자의 톡까놓고’,‘국민콜센터’.‘언박싱’ 등 정치시사를 다루는 진행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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