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이만유 고문아리랑은 어느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아리랑이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2015년 국가중요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때도 사람이 아닌 노래를 등재, 지정했다. 문경새재아리랑은 문경시 보호문화유산 지정 시 문경새재아리랑의 맥을 이어오신 송영철 옹이 계셨지만, 고인이 되셨고, 노래와 함께 오랫동안 아리랑의 전승·보존 활동을 해 오신 송옥자 선생을 노래와 함께 보유자로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아리랑 보존 활동을 하신 송옥자 선생을 부정하지도 않으며 지금까지의 공로에 대해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이후 아도위) 누구도 아니다.라고 하지 않고 인정한다. 하지만, 아리랑은 보유자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부르고 공연, 공유할 수 있는 우리의 무형자산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누구의 아리랑도 아닌 모두의 아리랑이다. 이기정 님이 단톡방에 올린 글에서 -‘송옥자 선생의 문경새제아리랑’이라고 하셨는데 이건 단견이며 아리랑의 속성을 이해 못 한 지식 결핍의 소산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말한다면 편향의 길을 가게 됩니다. - ‘공연단체인 문경시민위원회?’라고 말했는데 이 또한 아도위가 추구하는
(전 문경문협회장 이만유)신비로운 땅 월방산 천지의 기운이 조화로운 곳 여기, 1년 365일 언제나 개벽의 새날이 열린다 여명 속 서기(瑞氣) 가득한 이곳 푸른 노송 사이로 붉은 해 떠오르면 천지 만물이 생동하고 뭇 중생 고행의 하루가 노을 속 여운으로 물들 때 생과 삶을 반추하며, 조용히 두 손 모아 합장하면 향기 가득한 월방산에 달님이 찾아오시도다 월인천강(月印千江), 달빛이 비치는 곳마다 오! 은혜로움 넘치도다 운달산 한 줄기가 남쪽으로 길게 뻗어, 우뚝 솟은 월방산 이 산을 중심으로 산 5면 이루고 산동, 산남, 산서, 산북, 영순으로 나뉘어 부처님 그늘에서 중생들 옹기종기 모여 산다네 산마루 올라 바라보면 백 리 멀리 강, 들, 고을이 한눈에 펼쳐지니 광활한 세상이 발 아래 있도다 옛날 옛적부터 이곳 월방산은 불교의 성지였나니 아직도 곳곳에 대가람 유적 남아 있네 삼층석탑, 탑돌이 소원을 빌고 마애여래좌상, 길목을 지키며 나그네들 수호신이 되어 주고 약사여래좌상은 질병을 치유하고, 재앙을 쫓고 관세음보살입상은 사랑과 연민으로 중생을 구제하네 그 전통 이어받은 봉천사 산문을 여니 사부대중(四部大衆) 모여들고, 향화(香花)가 끊이질 않네 천년 세월을 지
(향토사연구가 이만유)우리가 살고 있는 문경에는 말(馬)과 관련된 지명이 몇 곳이나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육십갑자 중 43번째인 병오년(丙午年), 2026년 붉은 말의 해가 솟았다. 우리나라 국토 중에 말과 관련된 지명은 2013년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 744개소, 경상북도에 102개소, 문경시에는 영순면 말응리 ‘말바위골’과 사근리 ‘천마산’, 문경읍 중평리 ‘마전령’과 마원리 ‘용마골’, 호계면 부곡리 ‘마골’ 이렇게 5개소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문경시에 말과 관련된 지명이 20여 개소가 있으며 전수 정밀 조사를 하면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가팔라서 말이 굴러떨어진다는 마전령(馬轉嶺) 마전령(말구리재 946m)은 문경시 산북면 가좌리와 문경읍 중평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로 고갯길이 너무도 가파르고 험해서 말이 굴러떨어질 정도라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 마전령을 왕이 지나갔다. 1361년 겨울, 고려 제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경북 안동으로 몽진(蒙塵)할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관도(官道)인 계립령(鷄立嶺-하늘재)을 지나 마전령을 넘어 산북면 가좌
(데일리대구경북뉴스=황지현 기자)백두대간 중심에 자리 잡은 문경은 예로부터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전국에서 가장 많은 4개의 명산을 품고 있고 산자수명하여 조선의 선비들이 관직과 부와 명예를 탐하지 않고 무위자연의 삶을 살면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심성을 수양하며 성리학을 구현했던 공간인 구곡원림 또한 13개소로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소중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우리 문경 땅에는 곳곳에 선인들의 삶과 생활 속에서 남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 아주 긴 역사를 품고 있는 옛길이나 전통 사찰, 구곡원림 등 유적지마다 골짜기마다 다양한 글씨체와 수준 높은 필치로 바위에 새겨진 글자들이 많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까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유구곡, 봉암사 등 명소에 새겨진 글자의 주인공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아쉬움이 컸었다. 관광객이 찾아와도 학생들이 탐방을 와도 지도하는 분이나 안내 해설하는 분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니, 임기응변식으로 전부터 향토 사료나 지역 선배들이 막연히 추정했던 그대로 ‘신라 시대 고운 최치원이 여기 와서 남긴 글씨라고 한다.’라는 등으로 두루뭉
(제보자 : 이만유)지난 3월 3일 내린 폭설로 인해 안타깝게도 마성면 신현리 봉생정 앞에 서 있는 수령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수형이 빼어난 명품 소나무가 습식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윗부분이 처참하게 찢어지고 꺾였다. 봉생정은 서애 류성룡 대감이 한양에 오가면서 쉬어가던 곳으로 서애의 문인인 정경세가 건립한 정자로 임진왜란 시 소실되었던 것을 1844년에 향내 진성이씨를 비롯한 6 문중이 수계, 복원하여 지금까지 관리해 왔다. 봉생정은 역사적으로나 경관 면에서 문경의 여러 정자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정자로서 소야천과 가은천이 만나는 곳에 펼쳐진 경북팔경 제1경인 진남교반과 신라 고성 고모산성을 내려 보는 명소에 자리 잡고 있다. 봉생정은 주변의 소나무와 잘 어울렸으며 특히 정자 바로 앞 담장 넘어 위용을 지닌 노송이 정자의 격을 한층 더 높이고 돋보이게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피해를 보았다. 다행이랄까 윗부분은 꺾이고 찢어져 훼손된 부분의 상처가 심한 상태지만 몸체는 온전함으로 나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응급 처치는 물론 적절한 치료와 더불어 잘 관리, 보존될 수 있도록 대책이 세워지길 바란다.
(문경구곡원림보존회 초대회장 이만유)11월 21일 오후 2시 영강 파크골프장 상부 주차장에서 ‘영강구곡 경관길 조성사업 준공식’이 있었다. 총사업비 125억 원(국비 74, 시비 51)으로 도로 확장·포장 4.5km(폭 11.9m), 쉼터 3개소의 도로를 정비하는 공사로 2021년 착공하여 이날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지역 가수들의 식전 축하 공연을 시작으로 추진 경과보고, 감사패 수여, 인사 말씀 및 축사, 테이프 커팅식 순으로 진행됐다. ◇ 영강구곡은 언제 누가 설정했는가? 영강구곡은 2013년 1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순수 민간인들이 뜻을 합쳐 구곡원림을 조사, 연구, 보존하고 구곡문화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창립된 문경구곡원림보존회(초대회장 이만유)에서 구곡문화가 조선 시대에 머물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는 구곡원림에 국한된 보존 활동을 벗어나 구곡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꽃피우기 위해 21세기 신 구곡원림을 설정, 경영하기로 하여 탄생한 구곡이다. 그래서 문경의 젖줄인 영강 본류에 “영강구곡원림”을 설정하기로 하고 곧바로 여 TF팀을 구성하고 추진위원들이 아홉 곳의 곡(曲)을 선정, 각자 분담하여 현지 조사 후 자료를 정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구국 민병 충의의 넋이시여 어둠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이시여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선 호국의 영령들이시여 선조들이 살아왔고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 이 산하에 흘리신 피 거룩한 희생 앞에 무릎 꿇고 촛불 켜고, 삼가 향불을 사릅니다 - ‘제8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필자의 ‘호국의 등불, 의로운 별들이여’ 추모 헌시 중에서 - ‘호국보훈의 달’ 6을 맞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먼저 가신 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 뜻을 가슴에 새기고자 지난 6월 3일부터 6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아리솔지역아동센터(센터장 오미향)’ 주관으로 학생 26명, 지도 교사, 유관 기관, 향토연구사 등 38명이‘운강 이강년 의병 진군로(進軍路) 문경 구간 도보 순례’를 실시했다. 이 사업은 지역아동센터와 초등학교, 마을과 유관 기관(문경YMCA)이 연계한 돌봄체계 구축으로 경상북도교육청의 ‘마을 밀착형 지역특화 공모사업’ 일환으로 추진됐다. 의병 활동 지역이 산악지대라 위험 구간은 조령산악구조대 10명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도와주고, 차가 다니는 도로 구간은 문경경찰서 관할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삼국 시대’ 신라는 고구려, 백제에 비해 땅도 작고 세력이 약한 나라였다. 그러나 신라는 꾸준히 힘을 길러 두 나라와 대등할 정도로 국력을 키웠으며 제24대 진흥왕(眞興王) 때는 강대국이 되었다. 제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고구려 보장왕을 찾아가 군사 지원을 요청했으나 신라에 빼앗긴 옛 고구려 땅 계립령(하늘재)을 포함한 죽령 서북쪽 땅을 내놓으라는 조건을 걸자 이를 거부하자 옥에 가두었다. 구금 중에 죽음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김유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한 김춘추는 후에 신라 제29대 왕이 되었으나 태종무열왕 2년(655년) 고구려, 백제, 말갈 연합군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당나라 황제를 설득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게 되어 당의 소정방과 신라의 김유신이 협공하여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였고 그의 아들 문무왕이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었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원래 ‘나당연합’을 할 때 당나라는 ‘백제의 영토와 평양 이남의 고구려 땅’을 신라에 주기로 했는데, 이 약속을 완전히 무시하고 백제가 멸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옛날 길 떠난 나그네가 머물다 가는 주막은 술과 밥을 파는 주점이고 식당이면서 여관을 겸한 복합 휴게소라 할 수 있다. 주막은 외딴곳에 한두 집이 있기도 하지만, 나그네가 많이 다니는 길목에는 여럿이 모여 주막거리나 주막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 문경지역에서도 유곡역 주막촌, 문경새재와 돌고개 주막거리 등이 있었으며 한양에서 과거시험이 있는 시기에는 성시(成巿)를 이루었고 특히 술청에는 팔도 사람들이 모여 북새통이 되기도 했다. 주막은 임진왜란 후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등 관설(官設) 원(院)의 기능이 쇠퇴하고 참(站)마다 참점(站店)을 설치하여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는데 조선 후기(19세기)에는 영남대로 등 큰길에는 10∼20리 간격으로 사설 주막이 많이 생겼다. 주막에는 나그네의 눈에 쉽게 띄도록 현대의 광고판 같은 주막 고유의 표시로 ‘酒(주)’ 자를 문짝 등 잘 보이는 곳에다 써 붙이거나 처마 끝에 등을 달기도 하였고 술을 거르는 데 쓰는 도구로서 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 모양인 ‘용수’를 장대에 달아 지붕 위로 높이 올려 두기도 했다. 주막은 쉼터의 역할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민속신앙은 옛적부터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신앙이다.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등에 대해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사랑‧의뢰심을 갖는 믿음의 행위로서 단군신앙, 미륵신앙, 조상신‧성주신‧조왕신 등 가정신앙과 서낭당‧산신당‧장승‧솟대‧동제(洞祭) 등의 마을신앙, 점복신앙, 풍수신앙, 무속신앙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그중 무속신앙(巫俗信仰)은 신령(神靈)이 실재한다고 믿고 신력(神力)을 얻은 무당(巫堂)을 주축으로 민간에서 전승되고 있는 종교적 토속신앙이다. 무속신앙의 일종인 ‘문경 호계 오얏골 별신굿’은 규모가 큰 마을굿으로 우리의 소중한 무형 문화자산이므로 널리 알리고 잘 보존, 전승했으면 한다. ‘오얏골 별신굿’은 10년 주기로 개최하는 별신굿으로 우리 문경지역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독특한 민속문화이며 굿을 하는 날에는 인근 마을 주민은 물론 먼 곳 외지인들까지 모여들어 큰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별신굿은 내륙지역보다는 해안지역에서 많이 열린다. 내륙지역에는 현재 소수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문경지역에는 호계 부곡리 ‘오얏골 별신굿’을 비롯하여 산북면 ‘김용리 별신굿’, ‘석봉리 별신굿과 샛골 별신굿’, ‘내화리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신라 말 도선비기(道詵秘記)로 유명한 도선(道詵)에 의해 비롯되어 고려 때 크게 유행했으며 지형(地形)이나 방위(方位), 산세(山勢)·지세(地勢)·수세(水勢) 등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에 연결하여 집터나 묏자리를 구하는 이론이다. 근래에 와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기초로 한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으로 하늘과 땅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으로서 바람직한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했다. 예부터 명당(明堂)의 유형은 다양하다.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있는 명당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천계(天鷄)가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으로 보통 닭이 20여 개의 알을 품으므로 이 지형의 소응(昭應)은 받게 되면 대대로 많은 자손을 둘 수 있어 집안이 번성하고, 무리를 이끄는 위대한 호걸이 난다는 명당이 있고,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은 선녀가 금(琴)을 타고 춤추고 노래한다는 땅으로 대대로 자손이 번성하고 부자가 되며 과거급제 등 집안에 경사가 많이 생겨 잔치를 자주 연다는 명당이다. 쌍룡농주형(雙龍弄珠形)은 용이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승천하듯이 쌍용이 구슬을 가지고 희롱
(전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 이만유)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검은 토끼의 해’다. 육십 간지의 40번째로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토끼는 온순하고 지혜롭고 꾀가 많아 예로부터 매우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고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의 상징이며 만물의 성장과 번창, 풍요를 의미하며 만화나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에게 매우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토끼와 관련된 고사 중에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과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말이 있다. ‘교활(狡猾)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라는 뜻인데 이는 토끼가 천적(天敵)이 나타났을 때나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도망갈 굴을 3개 준비해 둔다는 것으로 사람도 어려움이나 재난(災難)을 당했을 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미리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워 놓아야 한다는 지혜를 일컫는 말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만일을 대비한 ‘플랜 B’‘플랜 C’를 만들어 두라는 말과 같다. 다만 나쁜 짓, 비난받을 짓, 부끄러운 짓을 하고 비겁하게 남을 속이면서 숨고 피할 굴이 아닌 국익을 위하는 것과 국민이 고난과 고통을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문경을 지켜주는 영산(靈山),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뜻을 지닌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鎭山)이다. 진산은 도읍지(都邑地) 또는 각 고을 뒤에 있는 큰 산으로 나라나 고을의 난리(亂離)를 평정(平定)하거나 나지 못하게 지켜주는 주산(主山)을 말한다. 주흘산 유래 중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해 와 있을 때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해서 왕이 머문 산이란 뜻으로 임금 주(主)자를 붙여 주흘산(主屹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2002년 UN이 ‘세계 산의 해’ 지정을 계기로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2002년 10월 산림청에서 ‘대한민국의 산의 날’을 10월 18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선정·공표한 바 있다. 산자수명한 문경에는 조선 시대 황장목(금강송)을 보호하던 황장봉산(黃腸封山)인 황장산(黃腸山 1,077m)과 문경의 진산 주흘산(主屹山 영봉-1,106m, 주봉-1,076m, 관봉-1,039m), 백두대간의 단전이라는 희양산(曦陽山 998m), 북한산과 도봉산을 합한 듯하다는 대야산(931m) 이렇게 4개의 명산이 있다. ‘백두대간 중심의 고장’ 문경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5천만의 고개, 고갯길의 대명사 문경새재를 다녀가신 분들께서 여행기를 쓸 때‘새재’를 ‘세제’로 표기하여 하이타이 세제를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른 뜻은 하늘을 나는 ‘새’와 고개를 말하는 ‘재’를 말하는 것이고 한문 표기는 조령(鳥嶺)이다. 문경새재 유래를 말하기 전에 고복수가 부른 ‘짝사랑’이라는 구슬픈 가락의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노랫말에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으악새’가 과연 무엇일까? 새일까? 억새일까? 많은 사람이 ‘으악새’는 ‘억새풀'이고 ‘으악새가 슬피 운다'는 것은 ‘새가 구슬프게 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억새잎이 서로 스치는 소리를 말한다. 라고 알고 있으나, 이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가 ‘으악’하고 우는 새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하니 논란의 여지가 없다. ‘으악’하고 우는 새는 ‘왜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으악새’를 아직도 ‘억새’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떠도는 유머 중에 5대 어거지(억지)가 있다. 위에서 말한 ‘으악새’를 억새라고 우기는 것과 청남대를 대학교 이름이라고, 구제역을 전철역 이름이라고, 복상사를 절 이름이라고, 몽고반점을
(전 문경시문화관광해설사회 회장 이만유)석탄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에너지 자원이다. 문경은 국내 제2의 탄전지대로서 1926년 대성탄좌가 남한 최초의 석탄광산으로 개광됐고, 그 이후 73개의 크고 작은 광산들이 생겨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석유, 가스 등 고품질 연료의 공급과 화석연료로서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1994년 7월 30일 은성광업소가 마지막 문을 닫으면서 문경 인구 16만 명의 번창했던 한 시절 영화를 뒤로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내 고향 문경이 다시 도약하는 제2의 번영을 꿈꿔보면서 오늘은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탄광촌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1979. 10. 27 새벽 은성광업소 13편 병반 근무 시 갱내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44명이 희생되는 아픔이 있었다. 화재 바로 전날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날이라 큰 뉴스에 가려졌지만, 화재가 난 다음 날 북한 방송에서 이 사고에 대해 보도가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북한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한 것일까? 이상하게 여긴 정보기관에서 사회 혼란을 획책한 간첩에 의한 방화로 추정하고 당일 근무자들을 조사했다는 비공식적인 뒷말이 돌기도 했다. 그